[대관] DO NUT CLIMB!

캐슈넛, 땅콩, 바나나, 오이, 청포도, 무화과, 딸기잼 든 도넛의 놀이터 아무래도 놀이는 장애물이 있어야 시작된다. 어떤 애들은 미끄럼틀을 거꾸로 기어올랐다. 몰래 화단의 꽃을 뜯어 김장놀이를 하고, 분필로 그린 모양을 뛰어넘으며 놀았다. 여기는 놀이터다. 여기 모인 세 작가는 납작해진 세상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며 놀기로 했다. 장애물로 삼는 건 삶에서 발견한 기호다. 기호는 폭력적이었다. 가능한 것을 금지하고, 흐르는 것을 잘라내고, 다른 모양을 내쫓았다. 박재영은 공공장소에서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지를 발견했다.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세상을 뒤집기로 결정했다. 붓으로 거꾸로 기어오른다. 박재영의 회화 속에서 성취와 낙하는 동시에 벌어진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세상에서 그 분별은 무의미해진다. 성지윤은 사회가 대개 두 가지로 여겨온 성별의 상징과 표본을 끈적하게 혼합하고 접붙여 여성의 외연을 확장한다. 기다란 조각 내부에는 에스트로젠과 테스토스테론, 통증과 체질을 극복하려는 약재, 기호식품, 향과 오물이 뒤섞여 있다. 여러 요소가 뒤섞여 길게 늘어진 조각은 정확하게 나눌 수 없는 상태로 전체를 이루며 트랜지션 중이다. 정은빈은 동그란 열매를 보며 묻는다. “모든 열매가 동그랗지는 않잖아.” 그 모양을 골똘히 바라보다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다가, 차라리 비워버리기로 한다. 깨끗하게 비워낸 구멍으로 매번 다른 장면이 차오른다. 울퉁불퉁한 현실이 수직으로 왕복하며 직조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해석하기를 잠시 멈춰야 한다. 대신 어떻게 놀지를 궁리해 보자. 눈으로 더듬어 새로운 경로를 찾고, 뒤꿈치를 들어 키를 높이고, 냄새의 출처를 찾아보자. 우리가 납작한 기호 위를 폴짝폴짝 뛰어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얻는 건 입안의 모래 비린내, 따가운 손바닥, 숨찬 혀, 달콤한 침, 구멍 너머로 보이는 새로운 친구들이다. 발견하지 못했을 뿐, 늘 곁에 머물러 있던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놀이터 미끄럼틀에 붙은 표지판 ‘Do not climb 올라가지 마시오’을 살짝 비틀어 구웠더니 맛있는 빵이 되었다 (Do-nut climb 도넛 클라임). 놀이터에서 얌전히 줄 서서 걸어갈 필요 있나? 도넛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놀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나가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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